도시가 커지면서 빈부의 격차는 사는 동네의 차이로 분명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도시 내 격리'현상은 이후 많은 지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1841년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인구 조사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일련의 지도들이 생겨나는 기초가 되었다. 더블린의 지도만 하더라도 색깔로 거리를 구분해, "최상층", "중상층", "하층", "최하층"을 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최하층"은 "장인, 백정, 천민"이 사는 구역으로 간주되었다.
그와 비슷한 분류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부스(Booth, Charles 1840~1916)를 꼽을 수 있다. 배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부스는 당시 적지 않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이다. 1889년 그는 <런던 시민들의 삶과 노동>이라는 책을 펴냈다. 전부 17권으로 된 이 작품은 사회 계층을 분류한 많은 지도를 담고 있다. "극빈층"이 사는 곳은 물론 "가장 열악한"지역이다. 더 나아가 부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최하층"이라고 부르면서 "타락한 반 범죄자"라며 흘겨보고 있다.
부스의 지도들은 19세기의 도시 생활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워낙 서로를 칼 긋듯 구분하고 있는데다 그 바탕에 이념적 성향을 깔고 있어서 당시 중상 계층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에게 있어 도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과 같았다. 따라서 도시 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어디가 가장 심한 '사회적 변혁의 시발점'이 될 것인지, 어느 지역의 주민들이 극도의 무정부적 행태를 벌이며 위협을 낳고 있는지를 주시하며 진단하는 수단이었다.
Booths London Poverty Map 출처 : http://www.bl.uk/learning/images/mappinghist/large4272.html |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그린 지도는 곧바로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민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좋은 예로 1930년대 미국 정부가 대공황으로 빚어진 건축 시장의 위축을 막기 위해 주택 융자금을 지원하려 나선 것을 꼽을 수 있다. 각기 다른 주거지역의 신용 가치를 실사한 전국 차원의 자료가 완성된 것은 1936년이다. 이 자료는 A부터 D까지 네 등급으로 해당 지역의 신용 가치를 평가하면서, 그 등급의 차이를 녹색, 청색, 황색, 적색으로 구분하고 있다. "유망"하고 수요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지역이 A등급이다. B구역은 그런 열기는 없지만 꾸준히 제 가치를 유지하는 좋은 곳이다. 반면 C지역은 시급히 손을 봐야 하는 노후 건물들이 들어찬 곳으로, 이를테면 흑인, 유대인, 외국인 이주자와 같은 "하류층"의 "유입"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D로 분류된 곳은 "불쾌한 무리"가 몰려 사는 "낙후된 거주 지역"이다.
이렇게 완성된 지도는 상세한 설명을 담은 글과 함께 각 은행과 고리대금업자에게 보내졌다. 결과는 불 보듯 훤했다. D지역에서 집을 구하려는 사람은 융자금에 기댈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C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대출을 받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결국 붉게 칠해진 지역은 연방 정부에 의해 보호를 받는 주택 융자 기금에 목말라 있었다. 이런 기금의 생혈조차 거절당한 도심 지역은 갈수록 생활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커지고 깊어만 가는 빈부격차의 골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 이런 지도 제작은 백인 중류층 부동산 산업이 주도해 만들어 놓은 편견을 연방 정부가 보증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이런 행태는 정부의 주택 개발부가 1965년 아주 뒤늦게나마 종결시키기까지 그 부당한 영향력을 계속 행사했다.
사회적 격차를 지도로 그리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특히 인구조사 자료는 정부와 사기업들로 하여금 부자 동네와 극빈 지역을 가려볼 수 있게 만들었다. 사기업은 이런 정보를 주로 표적 광고 및 전단지 배포를 위해 활용했다. 신용회사는 우편번호를 이용해 미리 승인된 신용카드 신청서를 살포해댔다. 주소만 가지고도 구직자의 신용 정보 및 부채 정도를 검색하고 확인할 정도가 된 것이다. 도시의 지도는 이렇듯 사회적 신분을 경제활동의 지표로 활용하는 행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런 식의 도시구역 구분은 비공식적으로 좋은 지역과 나쁜 지역, 안전한 곳과 우범 지역, 우리 동네 아이와 다른 동네 아이를 구분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분 격차를 그린 지도는 다시금 사회적 차별을 낳는다.
<지도, 살아있는 세상의 발견> 존 레니 쇼트 저, 김희상 역, 2009, p385~390
-"지도는 사회를 반영하고, 그 지도는 다시 사회를 재구성한다"는 관점은 <지도의 상상력> (와카바야시 미키오 저,정선태 역, 2006 ) 참조 http://www.yes24.com/24/Goods/1970643?Acod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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