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9일 토요일

전근대 도시의 오염물 처리방법, 18세기 청계천에 물난리가 일어난 원인



  전근대 도시는 농촌으로부터 빨아들이는 생산물에 의지해서만 존립할 수 있었다. 도시가 지배하는 농촌의 크기와 생산력 수준, 수탈율과 잉여 생산물의 농촌 내 유보 비율 등이 해당 도시의 규모를 규정했다. '놀고먹는 자들', 그것도 보통 농민들보다 더 많이 먹는 자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그만 한 물질적 담보가 있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중세의 서울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데에는 크게 곤란을 겪지 않았다. 중세적 중앙집권 체제 하에서 현물 재정이 운용되는 한 서울은 더 커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빨아들이는 것이 있으면 뱉어내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도시의 흡수력에 비례하여 도시 인구가 배출하는 오물의 양도 늘어난다. 물론 전근대의 오물에서 오늘날의 쓰레기를 연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단 썩지 않는 쓰레기는 없었으며, 음식물이든 옷감이든 찌꺼기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농촌에서처럼 모든 오물이 완전히 자연으로 환원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인구에 비해 토지가 부족했다. 이 시대 도시 오물의 대종은 분뇨와 재, 특히 분뇨였지만 그걸 모두 땅이 흡수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콩고 강의 자연지리적 특성 몇가지


  아프리카인 중개상들이 포로들을 직접 해안의 노예선까지 데려왔기 때문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가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디오고 카웅이 콩고강에 도착했던 이후 거의 4세기 동안 실제로 유럽인들은 이 강의 기원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콩고강은 초당 4천만 리터의 물을 바다로 쏟아낸다. 지구상에서 오직 아마존강만이 이보다 더 많은 물을 배출시킨다. 거대한 규모와 미지의 수로라는 점 이외에도 콩고강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었다. 선원들은 이 강의 수량이 다른 적도의 강들과 비교하여 1년 내내 비교적 변화가 없음을 발견했다. 아마존강과 갠지스강은 고수위와 저수위의 차이가 아주 크며, 유량은 강이 흐르는 지역의 우기나 건기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 왜 콩고강은 이들 강과는 다르게 수위에 변화가 없는가?

빈부 격차 지도


  도시가 커지면서 빈부의 격차는 사는 동네의 차이로 분명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도시 내 격리'현상은 이후 많은 지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1841년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인구 조사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일련의 지도들이 생겨나는 기초가 되었다. 더블린의 지도만 하더라도 색깔로 거리를 구분해, "최상층", "중상층", "하층", "최하층"을 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최하층"은 "장인, 백정, 천민"이 사는 구역으로 간주되었다.
  그와 비슷한 분류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부스(Booth, Charles 1840~1916)를 꼽을 수 있다. 배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부스는 당시 적지 않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이다. 1889년 그는 <런던 시민들의 삶과 노동>이라는 책을 펴냈다. 전부 17권으로 된 이 작품은 사회 계층을 분류한 많은 지도를 담고 있다. "극빈층"이 사는 곳은 물론 "가장 열악한"지역이다. 더 나아가 부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최하층"이라고 부르면서 "타락한 반 범죄자"라며 흘겨보고 있다.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고대부터 이어져 온 지중해 지역의 삼림파괴

사진 출처 : http://shareblessing.com/53

사진은 한 블로그에서 퍼옴. 이스라엘이지만, 거의 비슷한 경관을 보이고 있으므로...
지중해 문명 전지역에서 삼림파괴와 경관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났을 것으로 ..



  지중해 지역 상록수림의 실질적 파괴는 완결되었다. 삼림파괴는 선사시대에 시작되었다. 이것의 최초의 영향은 수목초원(parkland)의 출현으로 리브참나무류가 초원에 산재했다. 개방적인 이러한 종의 식생 경관은 오늘날 스페인 남서부 메세타에 위치한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에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삼림파괴가 훨씬 더 철저하게 진행되었다.

2012년 5월 4일 금요일

유럽 문명은 적절한 자연환경 덕분에 꽃필 수 있었던 필연일까?


관련 내용 스크랩...


유럽인은 온난하며, 물이 많고, 삼림이 있는 비옥한 주위의 땅을 유럽에 계승하여 크게 변화시켰다. 유럽은 지형적으로 작게 구분되며, 그 주위에 바다와 춥고 건조하며 불모가 지배하는 토지로 둘러싸여 있다. 유럽 문명은 이렇게 편안한 장소에서 일어나서 꽃을 피웠다. 유럽의 인문 현상을 온화한 토지와 그 주변의 그다지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이 제공하는 고립 상태로 설명하는 것에 유혹당할 수 있으나,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생각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는 이와 유사한 혜택을 받은 토지는 유럽과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를 만들었다. 유럽 문화지역에 대한 설명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유럽이 주로 자작극(self-written drama)이기 때문이다.

<유럽:문화지역의 형성과정과 지역구조> - 테리 조든 비치코프 외 저, 김종규 역, p.103


p.s. <대륙의 발명> 다시 읽어야함..

2012년 4월 30일 월요일

크리스탈러의 중심지이론

<공간이론의 사상가들>에 실린 글과 동일..




크리스탈러의 중심지이론

- 임석회, 감정평가연구원 책임연구원-


수 많은 공간이론 가운데 아마도 크리스탈러의 중심지이론만큼 유명한 이론은 없을 것이다. 공간이나 지역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크리스탈러란 이름을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크리스탈러의 전생애에 걸친 연구가 중심지이론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거의 모든 연구가 이와 관련된다. 그의 이론은 심지어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만큼 새삼 여기서 다시 소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들면서도 공간조직에 관한 연구에서 중심지이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본다면, 생애와 함께 그의 이론을 다시 한 번 살피는 것도 전혀 의미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크리스탈러의 생애와 학문적 배경